외국 성가를 한국어로 부를 때 생기는 언어와 음악의 충돌
교회에서 자주 부르는 성가 중에는 원래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다른 언어로 만들어진 곡을 한국어 가사로 번역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원어로 부를 때는 자연스럽던 음악적 악센트가 한국어로 부르면 어색하게 들리는 경우가 있다.
악보에 표시된 악센트가 틀린 것도 아니고, 번역된 가사가 잘못된 것도 아니다. 문제는 원래의 음악이 만들어질 당시의 언어와 현재 부르는 한국어의 구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원어의 어순과 한국어의 어순이 다르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어순의 차이다.
외국어로 만들어진 성가는 작곡가가 원어의 문장 구조와 단어의 위치를 전제로 작곡한 경우가 많다. 특정 단어가 음악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놓이고, 그 단어의 특정 음절에 강세가 오도록 선율이나 리듬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문장의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원어에서는 중요한 단어가 강박에 있었는데 한국어에서는 그 의미가 다른 위치에 놓일 수 있다. 또는 원어에서는 자연스럽게 강세가 들어가는 음절이 한국어에서는 조사나 짧은 음절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악보의 음악적 악센트와 한국어 문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서로 맞지 않게 된다.
악센트 표시가 오히려 문제를 드러내기도 한다
외국 성가의 악보를 보면 특정 음에 악센트나 강한 표현을 나타내는 기호가 표시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원어로 노래할 때는 그 기호가 가사의 중요한 단어나 강세가 있는 음절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어 가사로 바뀌면 상황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원어에서는 중요한 명사가 강박에 놓여 있었는데, 한국어 번역에서는 그 자리에 조사나 문장을 연결하는 짧은 말이 들어갈 수 있다.
악보대로 그 음을 강하게 부르면 음악적으로는 맞지만 한국어로는 말의 흐름이 부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반대로 한국어 가사에서 정말 중요한 단어가 약박에 놓이는 경우도 있다.
이때 단원들이 가사의 의미만 생각해서 그 단어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원래의 리듬 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
지휘자는 어느 쪽을 따라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 지휘자가 반드시 원곡의 악센트를 그대로 살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악보의 악센트를 모두 무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먼저 그 악센트가 왜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단순한 음량의 강조인지, 프레이즈의 방향을 나타내는 것인지, 중요한 단어를 강조하기 위한 것인지에 따라 접근 방법이 달라진다.
원어의 가사를 알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곡의 언어에서 어떤 단어가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작곡가가 왜 그 음에 음악적 강조를 주었는지를 알면 한국어 가사에서 어느 정도까지 수정해서 표현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쉬워진다.
한국어 가사를 억지로 음악에 맞추지 않는다
번역된 성가를 부를 때 흔히 생기는 문제는 음악에 맞추기 위해 한국어를 부자연스럽게 발음하는 것이다.
문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무시하고 악보의 강박마다 강한 힘을 주면 한국어가 실제 말처럼 들리지 않는다.
특히 조사나 어미에 강한 악센트가 들어가면 가사의 의미가 이상하게 전달될 수 있다.
이럴 때는 악센트를 완전히 없애기보다 표현의 정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악보상 강박은 유지하되 음량을 크게 증가시키지 않고, 프레이즈의 방향이나 음색으로 그 중요성을 표현할 수 있다.
반대로 한국어 가사에서 중요한 단어가 약박에 놓여 있다면 그 단어를 지나치게 크게 만들기보다는 발음과 프레이즈의 방향을 통해 의미를 살릴 수 있다.
결국 음악과 언어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다.
리허설에서는 원어와 번역 가사를 비교해보자
이런 문제를 발견했을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원어 가사와 한국어 가사를 함께 비교하는 것이다.
원어에서 악센트가 표시된 음에 어떤 단어가 있었는지 확인하고, 한국어에서는 어떤 단어가 그 자리에 들어왔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세 가지를 구분해서 생각하면 좋다.
음악적으로 중요한 음인가?
원어에서 중요한 단어였는가?
현재 한국어 가사에서도 중요한 말인가?
세 가지가 모두 일치한다면 특별한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음악적으로 중요한 음과 한국어에서 중요한 말이 서로 다르다면 지휘자가 표현 방법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한국어 번역 성가를 부를 때 중요한 것은 악보를 무시하는 것도, 번역 가사를 무조건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원곡의 음악적 의도를 이해한 상태에서 한국어가 자연스럽게 들리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번역은 단어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외국 성가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단순히 가사의 언어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어순이 달라지고, 음절의 수가 달라지고, 단어의 길이와 발음 구조가 달라진다. 그 결과 원래 작곡가가 의도했던 음악적 악센트와 새로운 가사의 자연스러운 강세가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일 수 있다.
따라서 번역된 성가를 연주할 때는 “악센트가 있으니 무조건 세게”라는 방식으로 접근하기보다 그 악센트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어 가사로 부르는 외국 성가라면 지휘자가 원어 가사의 구조를 한 번 확인해보는 것만으로도 해석에 큰 도움이 된다.
좋은 번역 성가 연주는 원곡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다.
원곡의 음악적 구조를 존중하면서도,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가 하나의 자연스러운 언어로 들리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지휘자의 역할은 악보와 가사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원곡의 음악적 의도를 이해하고, 그 의도가 한국어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살아나도록 두 요소를 연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