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주 의존성과 합창의 청음 능력
성가대 연습에서 피아노는 거의 필수적인 악기다.
처음 음을 잡아주고, 파트별 음정을 확인해주고, 어려운 화음이 나오면 각 성부의 음을 들려줄 수 있다. 특히 새로운 곡을 연습할 때 피아노가 없으면 연습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하지만 피아노가 오히려 합창의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
피아노가 없으면 음을 못 찾고, 반주가 조금만 약해져도 음정이 불안해지는 성가대라면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는 피아노를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피아노에 의존하고 있는 것일까?”
피아노는 음정을 맞춰주는 가장 편리한 도구다
피아노의 장점은 분명하다.
음정이 정확하고 소리가 명확하기 때문에 단원들이 자신의 파트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프라노가 높은 음을 어려워한다면 피아노로 해당 음을 들려주고 따라 부르게 할 수 있다.
새로운 곡을 처음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단원이 다른 성부의 소리를 듣지 않고 피아노만 듣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음은 피아노와 같은가?”
이것만 계속 확인하다 보면
“내 음은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놓치게 된다.
합창에서는 두 번째 질문이 훨씬 중요하다.
합창의 음정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합창에서 C 음을 부른다고 생각해보자.
혼자 C를 정확하게 부르는 것은 비교적 단순한 문제다.
하지만 다른 성부가 E와 G를 동시에 부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내가 C를 정확하게 부르고 있는지만이 아니다.
C와 E, 그리고 G가 함께 만들어내는 화음, C Major코드가 안정적으로 들리는지도 중요하다.
이것은 피아노만 들어서는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
피아노는 각각의 음을 명확하게 들려주지만, 합창의 실제 음향은 사람의 목소리가 서로 섞여 만들어진다.
따라서 단원들이 성장하려면 어느 순간부터 피아노가 아닌 서로의 소리를 기준으로 음정을 판단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피아노를 줄여야 하는 첫 번째 순간
가장 먼저 반주를 줄여볼 수 있는 시점은 파트별 음을 이미 익힌 후다.
곡을 처음 배우는 단계에서는 피아노를 충분히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하지만 음정과 리듬을 어느 정도 익혔는데도 계속 피아노에 의존한다면, 조금씩 역할을 줄여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피아노가 전주부터 모든 음을 연주한다.
그다음에는 시작음만 준다.
이후에는 어려운 부분에서만 음을 확인한다.
마지막에는 피아노 없이 해당 부분을 불러본다.
이런 방식으로 반주를 단계적으로 줄이면 단원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귀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두 번째 순간은 화음이 맞지 않을 때다
조금 의외일 수 있다.
성가대의 화음이 계속 불안정할 때 피아노를 더 크게 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항상 해결책은 아니다.
피아노가 커질수록 단원들은 자신의 소리와 다른 성부의 소리를 듣기보다 건반에 의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오히려 피아노를 멈추고 화음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C-E-G를 각 성부가 길게 유지하도록 한 뒤 서로의 소리를 듣게 한다.
처음에는 불안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단원들이 피아노가 아니라 화음 자체를 듣기 시작한다.
이 과정이 합창의 청음 능력을 키운다.
특히 무반주 합창, 아카펠라에서는 피아노를 내려놓아야 한다
무반주 합창은 피아노가 없는 상태에서 음정의 중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연습할 때 계속 피아노가 모든 음을 제공하면 실제 공연 환경과 연습 환경 사이에 큰 차이가 생긴다.
피아노가 있을 때는 잘 맞던 곡이 아카펠라가 되는 순간 흔들리는 이유 중 하나다.
아카펠라를 준비한다면 처음부터 피아노를 없앨 필요는 없다.
곡을 충분히 익힌 뒤 특정 구간을 선택해서 피아노 없이 연습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부르려고 하기보다 어디에서 음정이 흔들리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아노 없이 부르면 무엇이 들리는가
반주를 멈추는 순간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어느 성부가 음정을 끌어올리고 있는지, 어느 파트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지, 화음이 어디에서 불안해지는지가 훨씬 명확해진다.
이것은 단원에게도 좋은 경험이다.
평소에는 피아노가 가려주던 작은 실수들을 직접 듣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긴 음을 유지하는 구간에서 효과가 크다.
피아노가 있으면 건반의 소리가 음정의 기준을 계속 제공하지만, 피아노가 없으면 단원들은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음정을 유지해야 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합창의 청음 능력이 발달한다.
지휘자가 피아노를 끊는 것도 하나의 훈련이다
피아노를 얼마나 사용할지는 반주자의 문제가 아니라 지휘자의 리허설 전략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떤 화음이 계속 불안정하다고 하자.
피아노로 각 음을 반복해서 들려주는 방법도 있지만, 어느 순간에는 피아노를 멈추고 단원들에게 직접 질문할 수 있다.
“지금 베이스의 음이 들리나요?”
“알토와 테너의 간격이 어떻게 들리나요?”
“화음이 안정되어 있나요?”
이런 질문을 통해 단원들이 직접 듣도록 유도할 수 있다.
합창단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지휘자는 피아노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단원들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해진다.
반주의 역할을 줄인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피아노를 최대한 적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 리허설이라는 뜻은 아니다.
초보 성가대라면 피아노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피아노가 없으면 새로운 멜로디를 배우거나 복잡한 리듬을 익힐 때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또 음정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무조건 아카펠라로 반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 줄일 것인가’다.
악보를 익히는 단계에서는 피아노의 도움을 받고, 음악을 완성하는 단계에서는 점차 피아노의 역할을 줄이는 것이 효과적이다.
좋은 반주는 합창을 대신하지 않는다
피아노 반주의 가장 좋은 역할은 성가대를 대신해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성가대가 스스로 노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피아노가 음정을 짚어줄 수 있다.
하지만 리허설이 진행될수록 단원들은 그 음정을 기억하고,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음정의 중심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피아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시점도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이제 피아노가 없어도 이 부분을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반주를 조금 줄여볼 수 있다.
그리고 피아노 없이 무너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합창단의 청음 능력을 훈련해야 할 지점이다.
피아노가 없는 순간에 진짜 실력이 드러난다
좋은 성가대는 피아노가 있을 때만 정확한 성가대가 아니다.
피아노가 사라져도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음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모든 연습에서 반주를 없앨 필요는 없다.
오히려 피아노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과 필요한 순간에 피아노를 내려놓는 것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
성가대가 어느 정도 곡을 익혔다면 피아노를 조금씩 줄여보자.
그 순간부터 단원들은 피아노 대신 서로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합창은 단순히 각자 자신의 파트를 부르는 집단에서,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앙상블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