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의 공명과 합창 음정의 관계
성가대 연습을 하다 보면 지휘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모음이 서로 달라요. 조금만 통일해볼게요.”
그런데 모음을 통일하고 다시 노래했을 때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생긴다. 아까까지 불안했던 음정이 조금 안정되기도 하고, 반대로 특정 음이 갑자기 높거나 낮게 들리기도 한다.
발음만 바꿨을 뿐인데 왜 음정까지 달라지는 것처럼 느껴질까?
이것은 성악에서 모음이 단순한 언어적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음은 목소리가 울리는 공간의 모양을 바꾸고, 그 결과 특정한 소리가 더 강하게 들리도록 만든다. 합창에서는 이 차이가 여러 사람의 목소리와 동시에 겹치기 때문에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같은 음이라도 모음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사람의 목소리는 성대에서 만들어진 소리가 그대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성대에서 진동이 만들어지면 그 소리는 목과 입안의 공간을 지나면서 여러 방식으로 변화한다. 입을 얼마나 벌리는지, 혀를 어디에 두는지, 입술을 어떻게 모으는지에 따라 특정 주파수의 소리가 더 강하게 울릴 수 있다.
그래서 같은 C음을 부르더라도 ‘아’와 ‘이’는 전혀 다르게 들린다.
음높이는 같아도 음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단순히 듣기 좋은 소리와 나쁜 소리의 문제가 아니다. 합창에서는 서로의 소리를 듣고 음정을 맞추는 과정에도 영향을 준다.
합창에서는 모음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난다
혼자 노래할 때는 모음이 조금 달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30명, 50명의 성가대가 동시에 노래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프라노는 ‘아’에 가깝게 부르고 알토는 ‘어’에 가깝게 부른다면, 악보에는 같은 모음이 적혀 있어도 실제로 들리는 소리는 서로 다르다.
테너와 베이스까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모음을 만들면 각 성부의 소리가 하나로 섞이지 않는다.
이때 재미있는 현상이 생긴다.
단원들은 분명히 같은 음을 부르고 있는데 화음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면 서로의 음정을 확인하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모음의 차이가 음정 문제처럼 나타날 수 있다.
음정이 틀린 것이 아니라 ‘음정이 그렇게 들리는’ 경우
합창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음높이를 판단할 때는 단순히 하나의 주파수만 듣는 것이 아니다. 목소리 안에는 기본이 되는 진동뿐 아니라 여러 배음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모음에 따라 이 배음 중 어떤 부분이 더 강하게 들리는지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모음에서는 밝고 선명한 소리가 강하게 느껴지고, 다른 모음에서는 어둡고 둥근 소리가 강조된다.
이런 변화는 실제 음높이가 크게 움직이지 않았더라도 청자가 느끼는 음정의 중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지휘자가 “음정이 조금 내려갔어요”라고 판단했을 때 실제 원인이 음을 잘못 잡은 것이 아니라 모음의 형태나 발성의 변화일 수도 있다.
특히 고음에서는 차이가 커진다
모음의 문제는 고음에서 더 쉽게 드러난다.
높은 음을 부를 때 가수는 낮은 음역에서 사용하던 입 모양과 공명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이’처럼 입안의 공간이 좁아지는 모음은 고음에서 지나치게 좁게 만들 경우 소리가 답답해질 수 있다.
반대로 ‘아’를 지나치게 크게 벌리면 소리가 퍼지면서 음정의 중심을 잡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래서 전문적인 합창에서는 악보에 적힌 모음을 그대로 말하듯 발음하는 것과 실제로 노래할 때 필요한 모음의 형태가 조금 다를 수 있다.
특히 높은 음에서 모음을 약간 수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발음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리가 안정적으로 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모음 통일은 똑같은 입 모양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할 수 있다.
“모음을 통일한다”는 말을 모든 단원이 완전히 똑같은 입 모양으로 노래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람마다 성도의 크기와 모양, 성대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똑같은 모양을 만들어도 같은 소리가 나오지는 않는다.
합창에서 필요한 것은 입 모양 자체를 복사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모음을 들었을 때 서로 비슷한 방향의 소리가 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가대 전체가 ‘아’를 부르는데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밝고 얇은 소리를 내고, 다른 사람은 지나치게 어둡고 깊은 소리를 낸다면 두 목소리가 쉽게 섞이지 않는다.
이때 발음과 공명의 방향을 조금씩 조절하면 각각의 목소리가 훨씬 자연스럽게 하나로 묶인다.
모음이 통일되면 음정을 듣기도 쉬워진다
아카펠라에서는 이 부분이 특히 중요하다.
반주가 없으면 단원들은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음정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모음이 제각각이면 같은 음을 부르고 있어도 음색 차이가 너무 크게 발생한다.
그러면 “내 음이 다른 사람보다 높은가, 낮은가?”를 판단하기가 어려워진다.
반대로 모음과 공명의 방향이 어느 정도 통일되면 성부 사이의 소리가 명확하게 들린다.
화음이 어디에서 흔들리는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모음 통일은 단순히 합창을 예쁘게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단원들이 서로의 음을 더 정확하게 듣도록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리허설에서 확인해볼 수 있는 간단한 방법
실제로 연습할 때는 복잡한 이론을 설명하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다.
성가대가 하나의 화음을 길게 유지하도록 한다.
그리고 모든 성부가 같은 모음으로 소리를 유지하면서 서로의 소리를 듣게 한다.
그 상태에서 입 모양이나 혀의 위치를 조금씩 변화시켜 보면 화음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형태에서는 소리가 갑자기 하나로 모이고, 어떤 형태에서는 각 성부가 따로 들린다.
이 차이를 직접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모음이 맞습니다”라고 지시하는 것보다 단원들이 직접 차이를 듣게 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음정 문제가 생겼을 때 모음부터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성가대에서 특정 부분의 음정이 계속 불안하다면 바로 피아노로 음을 다시 잡아주는 방법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먼저 모음을 들어볼 수 있다.
소프라노와 알토가 같은 모음을 같은 방향으로 만들고 있는지, 고음에서 모음이 지나치게 좁아지거나 벌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성부마다 소리의 밝기와 어두움이 지나치게 달라지고 있지는 않은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의외로 이런 부분을 정리한 뒤 음정이 안정되는 경우가 있다.
음정을 직접 수정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는 상태를 만든 것이다.
소리를 통일하면 음정도 달라질 수 있다
성가대의 음정은 악보에 적힌 음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같은 음이라도 어떤 모음으로 부르는지, 입안의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떤 배음이 강하게 울리는지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소리가 달라진다.
그리고 합창에서는 이 작은 차이가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나타난다.
그래서 모음 통일은 단순한 발음 교정이 아니다.
성가대의 음색을 정리하고, 성부 사이의 소리를 섞고, 서로의 음정을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결국 좋은 합창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같은 방향으로 울리는 것이다.
그렇게 소리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이기 시작하면, 음정 역시 이전보다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성가대의 음정 문제를 해결할 때 악보와 피아노만 바라봐서는 놓치는 것이 있다.
때로는 음이 아니라 그 음을 담고 있는 모음부터 들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