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음색과 집단 음색의 충돌
합창 연습에서 단원들에게 자주 요구하는 요구사항 중 하나가 있다.
바로 “비브라토를 조금만 줄여주세요.” 이다.
비브라토는 성악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좋은 목소리의 특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합창에서는 왜 비브라토를 많이 사용하지 않을까?
비브라토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만드는 요소와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하나로 만들어야 하는 합창의 목표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데 있다.
비브라토는 무엇을 변화시키는가
비브라토는 노래하는 동안 음높이가 일정한 폭과 속도로 미세하게 움직이는 현상이다.
완전히 고정된 음을 내는 것과 비교하면 목소리에 움직임과 생동감이 생긴다. 독창에서는 이 움직임이 음색에 표현력을 더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합창에서는 여러 사람의 비브라토가 동시에 발생한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폭과 속도로 움직이는 비브라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폭이 크고 느린 비브라토를 사용하고, 다른 사람은 작고 빠른 비브라토를 사용한다. 또 어떤 사람은 거의 직선에 가까운 음을 낸다.
이렇게 되면 각각의 목소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 사람에게는 표현력이지만, 합창에서는 움직임이 많아진다
예를 들어 열 명의 가수가 같은 음을 부른다고 생각해보자.
두명은 비브라토가 거의 없고, 세명은은 안정적인 비브라토를 유지하고, 나머지 다섯명은 서로 다른 폭의 비브라토를 사용하고 있다.
악보상으로는 모두 같은 음을 부르고 있지만, 하나의 소리로 들리지 않고, 여러 소리가 겹쳐 있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특히 긴 음을 유지하는 부분에서는 더욱 쉽게 드러난다.
이것이 비브라토가 블렌딩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다.
블렌딩은 목소리를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합창에서 말하는 블렌딩을 “모든 사람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사람마다 성대의 구조와 음색이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같은 소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좋은 블렌딩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하나의 덩어리처럼 들리도록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음량, 모음, 발음, 음정, 음색뿐 아니라 비브라토도 영향을 준다.
개인의 음색이 지나치게 강하게 드러나면 전체 소리에서 특정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특히 비브라토의 폭이 크면 귀에 쉽게 포착된다.
그래서 목소리가 크지 않아도 개인의 존재감이 강하게 느껴질 수 있다.
왜 무반주 합창(아카펠라)에서 더 민감할까?
반주가 있는 합창에서는 반주가 합창을 받쳐주고 음정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무반주 합창에서는 합창단 스스로 음정의 중심을 만들어야 한다.
이때 서로의 소리를 듣고 비브라토의 정도를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개인 또는 한 성부에서 비브라토의 폭과 속도가 크게 다르면 성부간의 균형을 맞추기가 힘들다.
특히 화음을 길게 유지해야 할 때 그렇다.
화음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부분에서 지나친 비브라토는 밸런스를 깨뜨린다.
그래서 아카펠라 합창에서는 비브라토의 사용을 자제해야 안정적으로 들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비브라토를 없애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합창에서는 비브라토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다.
실제 합창에서는 자연스러운 비브라토를 사용하고, 레퍼토리와 시대, 합창단의 스타일에 따라 적절한 비브라토를 사용한다.
문제는 비브라토의 사용 자체가 아니라 과도한 비브라토가 합창의 블렌딩을 깨뜨리는 경우다.
예를 들어 합창에서 어느 정도의 비브라토가 섞여 있는 것과, 한 명의 가수가 독창처럼 강한 비브라토를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
첫 번째는 집단의 음색에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지만, 두 번째는 개인의 음색을 강조하는 효과가 생긴다.
지휘자가 들어야 할 것은 비브라토의 유무가 아니다
합창 리허설에서 “비브라토를 줄이세요”라고만 말하면 단원들이 목을 굳히거나 의도적으로 음을 고정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발성이 무너지면서 합창 소리가 더 거칠어 질 수 있다.
좋은 해결 방법은 비브라토 때문에 실제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프라노 한 명의 비브라토가 다른 사람보다 크다면 그 목소리가 소프라노 파트에서 튀는지 들어본다.
또 화음이 흔들리는지, 합창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지 확인한다.
문제가 없다면 굳이 비브라토 자체를 없앨 필요가 없다.
반대로 비브라토 때문에 밸런스가 무너지고 화음이 되지 않는다면 ‘Senza Vibrato’ 요구할 수 있다.
성량을 줄여도 블렌딩이 좋아질 수 있다
비브라토 문제는 성량과도 관련이 있다.
개인의 비브라토가 강한 상태에서 큰 소리까지 내면 개인 음색이 훨씬 쉽게 튀어나온다.
반대로 같은 발성 상태에서 성량을 조금 낮추면 다른 성부와 섞이면서 비브라토의 존재감도 줄어들 수 있다.
그래서 합창에서 블렌딩을 만들 때는 무조건 비브라토를 없애기보다 성량과 모음, 성부 간 균형을 함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고음에서 이런 차이가 크다.
고음을 강하게 부르면서 비브라토까지 커지면 고음(소프라노, 테너) 파트의 소리가 합창 위로 튀어나오기 쉽다.
이때 고음 파트 단원들에게 호흡으로 성량을 조절할 것을 요구하고, 모음을 일치시키면, 오히려 고음이 더 잘 섞이고 밸런스가 잡히면서 합창이 더 선명하게 들릴 것이다.
개인의 좋은 소리가 항상 합창의 좋은 소리는 아니다
합창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독창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최대한 어필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된다.
하지만 합창에서는 개인의 장점을 어느 정도 조절해야 할 때가 있다.
아름답고 풍부한 비브라토가 개인에게는 큰 장점이지만, 그 비브라토 때문에 개인의 소리가 튀게 들린다면 합창에서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비브라토가 없는 소리는 건조하고 아마추어처럼 들린다.
따라서 좋은 합창단은 비브라토를 하나의 규칙으로 통제하지 않고 그 정도를 조절해야 한다.
결국 블렌딩은 ‘비브라토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합창에서 비브라토가 많으면 블렌딩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개인의 목소리가 합창단의 소리보다 튀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브라토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비브라토가 합창에서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이다.
좋은 블렌딩은 모든 가수가 자신의 개성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목소리를 합창에 잘 맞추는 것이다.
결국 합창에서 필요한 질문은
“비브라토를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가 아니다.
“지금 이 비브라토가 합창 전체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를 묻는 것이 더 정확하다.
개인의 목소리를 표현하면서 합창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 때, 비브라토는 ‘합창의 적’이 아니라 합창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